먼로주의 또는 먼로 독트린은 제5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주창했던 것으로 요약하자면, 미국이 유럽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 열강들도 미국에 간섭하거나 새로 식민지를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추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로 이어집니다. 민족자결주의는 아시아와 남미 각국의 식민지들의 독립 열망을 자극해 우리나라에서는 3·1 운동의 모티브가 됩니다.
먼로 대통령이 먼로주의를 선언한 것이 1823년 12월이니까, 이제 막 200주년이 되었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200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뼈대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먼로독트린 200주년을 맞아 미국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미국의 외교가 21세기형 먼로주의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와 함께 2위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드샌티스 주지사의 21세기형 먼로주의 주장에 많은 미국 지식인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로주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드샌티스 주지사가 강조하는 21세기형 먼로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1. 먼로주의의 발단과 진화
미국 건국 초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표방했습니다. 이때 고립주의는 유럽이 미국에 간섭하지 말고,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을 했으니 당연한 입장이었을 겁니다. 이후 정국이 안정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은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을 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특히 중남미에 영향을 행사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유럽 각국이 미국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개입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미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고, 뒤늦게 식민지 개척에 뛰어든 러시아와 독일도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영국만 유럽 국가가 중남미에 진출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영국은 내심 미국이 자신의 앞마당이라고 생각했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의 중남미 진출을 차단하는 것이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중단하라’는 공동선언을 할 것을 미국에 제안합니다. 영국의 제안을 받아 든 먼로 대통령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존 퀸시 애덤스의 의견을 들어, 1823년 12월 3일 영국을 배제하고 미국 독자적인 먼로 독트린을 발표합니다. 미국은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 유럽도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고, 식민지 건설도 중단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먼로주의 형성에 결정적 공헌을 한 애덤스 국무장관은 이후 먼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6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이 같은 외교적 기틀을 더욱 확고히 합니다. 워싱턴 대통령의 고립주의가 팽창적 고립주의로 진화한 것입니다.
물론 먼로독트린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신생독립국이자 군사력도 변변찮은 나라였기 때문에 유럽 각국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 각국이 미국의 선언을 무시하고 중남미 지역에 상륙하는 일이 허다했으며, 미국도 이렇다 할 만큼 저항하지도 못했습니다. 유럽 각국이 유럽 내 갈등으로 아메리카대륙에 신경 쓸 여력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미국은 국력을 빠른 속도로 키워가면서 팽창적 고립주의, 먼로주의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초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같은 기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전후 세계질서를 정비하기 위한 파리 평화회의를 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14개 조 평화원칙’을 발표합니다. 국제연맹 창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14개 조 평화원칙의 핵심 내용은 민족자결주의, 공해(共海)에서의 자유, 법에 의한 질서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신이 바로 민족자결주의입니다. 식민지나 점령지역 주민들도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의 팽창적 고립주의가 한번 더 진화한 것입니다. 이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약소민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파했고,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 운동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윌슨 대통령의 미국은 조선의 독립이나 아프리카, 중남미 제3세계의 독립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힘을 빼기 위해서 이들이 지배하고 있던 약소민족들의 독립을 부추겨 여러 신생국가로 쪼갤 의도였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제3세계 국가들의 독립이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국경을 형성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중국, 먼로주의에 대한 도전
미국의 오랜 외교정책 기조인 먼로주의를 위협하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먼로주의는 사실 유럽 국가의 미국에 대한 간섭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립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이 아닌 중국이 등장하면서 먼로주의는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유럽이 아니라는 이유로 20세기말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은 소홀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중국은 과거 유럽 이상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있고, 먼로주의도 유럽이 아니라 중국으로 대상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최근 미국 언론들은 중국이 쿠바 북부해안에 군사훈련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쿠바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정말 아연실색할 일이었습니다. 1962년 당시 소련이 쿠바에 탄도미사일 기지 건설을 시작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전쟁 직전까지 대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쿠바 미사일 위기의 데자뷔인 셈입니다. 쿠바는 그야말로 미국의 코 앞에 위치한 섬나라입니다. 요즘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나와 있지만, 쿠바에서는 굳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북쪽의 보스턴부터 뉴욕, 워싱턴에 이어 애틀랜타까지 미국 주요 도시를 직접 타격할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쿠바에 도청기지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도청기지는 중국과 쿠바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4개의 도청기지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당국에 쿠바 도청시설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쿠바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와 보급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최근 캄보디아에 해군 전초기지를 설치했고, UAE(아랍에미리트)에도 칼리파항에 군사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아프리카 지부티에도 중국군 기지가 있지요. 이 같은 중국의 군사적 확장이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미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0년 전 미국의 먼로독트린 선언이 유럽을 향해 ‘남미는 우리 영역’이라고 외친 것이었는데, 그 영역을 중국이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이를 두고 혹자들은 미국의 먼로주의가 종식되고 중국의 먼로주의가 등장했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2012년 중국이 미국을 향해 상호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는데, 200년 전 먼로 대통령이 유럽에 제안했던 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중국은 또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를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이 먼로주의를 주창할 때 썼던 표현인 ‘아메리카인에 의한 아메리카’와 판박이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행보를 굉장히 불편해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이 지지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항해 중국이 후안 과이도가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라고 주장하자, 당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간이 “베네수엘라는 우리의 영역이다. 중국이 간섭할 곳이 아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군사작전도 불사할 수 있다”라고 발끈했습니다. 이른바 미국의 먼로주의와 중국의 먼로주의가 정면 충돌한 셈입니다.
3. 21세기형 먼로주의
미국의 대권주자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21세기형 먼로주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직 논의 초기단계라 21세기형 먼로주의가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예단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군사적 외교적 확장을 견제하는 방향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대로 두면 중남미에 중국의 군사시설이 속속 들어와 미국의 실질적인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고위 관료들은 이미 공공연히 “미국의 잘못 때문에 중국 잠수함이 멕시코항에 들어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언론에 나와 “중국이 우리 서반구에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21세기형 먼로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줄기는 중남미에서 미국의 신뢰회복이 될 것입니다.
200년 전 미국은 먼로주의 외교정책을 통해 유럽으로부터 자유롭고, 미국과 함께 잘 사는 아메리카를 꿈꿨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먼로독트린 선언 초기에는 중남미 국가들은 두 손 들어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이 빠진 자리를 미국이 채우면서 중남미에서 먼로주의는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경찰을 자처하며 미국 패권주의를 확장했고, 이것이 중남미에 대한 간섭과 억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 중남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신자유주의 이식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중남미 경제는 물가와 환율 상승 등으로 신음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남미에 잇따라 좌파정권이 등장하면서 미국과 더욱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죠. 그러다가 9·11 사태가 터지자 조지 W 부시 정권은 남미를 방치하게 되고, 버락 오바마 정권 들어서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남미를 애써 외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미는 미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더욱 커졌습니다. 실제로 중남미 주민들은 미국에 관해 행복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침략, 쿠데타, 보호령 등 부정적인 것들 뿐입니다. 수시로 반미 시위가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급기야 남미 국가들이 힘을 합쳐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를 만들어 미국에 대항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남미에 기반을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이 다시 먼로주의를 부활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남미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그 첫 단추가 돼야 할 것입니다.
드샌티스 주지사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겨루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1세기형 먼로주의가 앞으로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대선 이후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21세기형 먼로주의를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21세기형 먼로주의는 미국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