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신군부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의 역사적 평가가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남아 있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향년 94세를 일기로 13일 사망했습니다. 군 안팎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건강 악화로 숨을 거두었으며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정호용 신군부 사망으로 인해 과거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들을 직접 증언할 수 있던 핵심 지휘관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32년에 태어난 정호용 전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로 군부 내 비밀조직인 하나회 인맥을 바탕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군부 인맥 서열 3순위로 꼽히며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내무부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5공화국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역사적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후계자 경쟁 과정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중심에 있던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사망이 가지는 의미와 신군부 핵심 5인의 최후, 그리고 5·18 진상 규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되짚어보고 진실 규명이 지닌 무게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정호용 신군부 사망과 마지막 생존자의 퇴장
정호용 신군부 사망 소식은 13일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되었으며 향년 9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의 죽음으로 인해 12·12 군사반란과 5·18 진압에 관여했던 핵심 인사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습니다. 1932년생인 고인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며 하나회 인맥을 통해 군부 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졌습니다. 군 내외에서 서열 3순위로 평가받던 그는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내며 정권의 핵심 실세로 활동했습니다.
과거 권력의 중심에 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세월이 흘러 법의 심판대에도 올랐습니다. 12·12 군사반란 가담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 관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화려했던 군인 및 정치 생명에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건강 악화로 투병하다가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지면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할 수 있는 산증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난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인물마저 사망하면서 당시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더욱 큰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2. 신군부 핵심 5인의 구성과 역사적 퇴장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5·18 당시 신군부 내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 인물은 5명으로 압축됩니다.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을 비롯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이 이들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며 군부 독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들 5인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이희성, 황영시 등도 차례로 사망했습니다. 이번에 정호용 전 장관까지 사망하면서 신군부 핵심 5인은 전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동시에 과오에 대한 법적, 역사적 단죄가 생존 인물들을 통해 더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합니다.
3. 5·18 진상 규명과 남겨진 과제들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의 사망으로 인해 5·18 당시 신군부 핵심 관계자로부터 직접 진실을 확인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5·18기념재단 박강배 상임이사는 주요 인물들이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사망한 것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특히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행방불명자와 암매장지 확인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유혈 진압의 현장에 있었던 그는 살상 진압의 책임을 외면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여러 기록이 존재하지만 지휘 계통에 있던 당사자의 육성 증언이 사라진 점은 진실 추적에 큰 장애물입니다.
역사적 책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와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은 이제 남겨진 기록과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이어져야 하는 무거운 책무가 되었습니다.
4. 하나회 인맥과 군부 실세들의 궤적
정호용 전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하여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12·12 군사반란을 성공시키며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군과 정부의 요직을 독점하며 5공화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군부 인맥 서열 상위권에 위치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고 정권 창출의 공신으로 대우받았습니다.
정권 후반기에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후계자 구도를 두고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결국 군 출신 실세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고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군사반란과 내란죄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서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영광을 누리던 이들이 역사의 심판을 거쳐 모두 세상을 떠남에 따라 사조직을 통한 권력 장악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5. 역사적 기록과 기억해야 할 현대사의 교훈
신군부 핵심 인물들의 사망은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완전히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생존 증인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앞으로는 철저한 문서 기록과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아픔과 진실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아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와 관련 단체들은 은폐되었던 진실의 파편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발포 명령의 실체와 행방불명자들의 행방을 찾는 일은 당사자의 사망과 관계없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역사의 과오를 잊지 않고 반면교사 삼는 자세야말로 세상을 떠난 인물들의 최후를 지켜보는 현대인들이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