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1월 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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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대한천일은행 재조명과 1899년 회계장부의 역사

우리은행의 뿌리가 1899년 대한제국의 은행에 있다는 사실, 평소 은행을 이용하면서 떠올리기는 쉽지 않죠. 이번 우리은행 대한천일은행 재조명의 중심에는 창립 연도만큼이나 흥미로운 옛 회계장부가 있습니다. 2026년 11월 6일 우리은행과 국민대학교가 학술대회를 열고 민족자본 형성과 전통 복식부기의 의미를 다시 살폈거든요. 오래된 장부가 오늘의 금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면 이 소식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우리은행 대한천일은행 재조명과 1899년 회계장부의 역사

우리은행과 국민대가 대한천일은행을 다시 살펴본 이유

우리은행과 국민대가 대한천일은행을 다시 살펴본 이유
우리은행과 국민대가 대한천일은행을 다시 살펴본 이유

우리은행은 2026년 11월 6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국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대한천일은행의 민족자본 형성과 회계장부의 학술 가치 연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발표는 근대 민족 경제와 은행 설립, 민족자본 형성, 회계장부의 역사적 의의라는 세 갈래로 나뉘었고, 연구 성과는 모두 8편이었습니다. 저는 이 가운데 장부 자체가 연구 대상이 됐다는 점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은행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대개 오래된 건물이나 창립 기념일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받고 빌려주며 거래를 기록한 방식까지 들여다봤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은행’이라는 홍보 문구에 머물지 않고, 은행이 어떤 금융 활동을 했는지 사료로 검증하는 접근인 셈입니다.

우리은행은 올해 국민대와 소장 사료를 연구해 왔으며, 앞으로 연구 성과를 묶은 책을 발간하고 역사 자료를 사회와 공유하는 사업도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연구서의 구체적인 발간 일정은 이번 발표에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행사 내용은 학술대회 보도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99년 대한천일은행은 왜 만들어졌을까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1월 30일 대한제국 시기에 문을 열었습니다. 개항 이후 조선에는 외국계 은행이 진출했고, 국내 상인들은 자금을 안정적으로 융통할 금융기관이 필요했죠. 대한제국 정부 역시 조세와 화폐 유통을 관리할 금융 기반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은행 설립은 황실과 상인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국가기록원 해설에 따르면 은행은 초기부터 고종의 지원을 받았고, 조선인이 아닌 이에게 주식을 매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정관 규정도 두었습니다. 당시 자국 상권과 자본을 지키려는 고민이 구체적인 운영 규칙으로 남아 있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민족은행’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수식어로만 붙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주요 업무는 정부 조세 수납과 운송, 상인의 예금과 대출, 환거래 등이었습니다. 특히 국내 상인을 대상으로 상업적 신용에 바탕을 둔 대출을 제공했다는 기록은 은행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다만 대한천일은행을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라고 단정하면 이전에 설립된 은행들의 역사를 놓치기 쉽습니다. 저는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초기 민족자본 은행’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송도사개치부법과 정일기가 특별한 이유

이번 재조명에서 가장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이름은 송도사개치부법입니다. 개성상인들이 사용하던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 방식으로, 돈과 물품의 이동을 장부 사이에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대조하는 회계 관행을 가리킵니다. 요즘 회계 프로그램처럼 화면에서 자동으로 계산해 주던 시절이 아닌데도 거래를 남기고 맞춰 보는 체계가 있었다니 흥미롭습니다.

대한천일은행의 ‘정일기’는 날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간 내역을 적은 주장부로, 현재의 현금출납부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장책’은 거래처와 계정에 따라 내용을 옮겨 적은 장부이고, ‘주회계책’은 수익과 손실을 파악하는 결산 자료에 해당합니다. 정일기에서 장책을 거쳐 주회계책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면 당시의 회계가 단순한 메모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기록원은 정일기에 은행 창립 전인 1899년 1월 25일부터 거래 기록이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은행을 세우기 위한 움직임과 실제 금전 거래가 어떻게 맞물렸는지 살펴볼 단서죠. 한 장부만 남았다면 해석이 제한됐겠지만, 같은 시기의 여러 장부가 함께 전해진다는 점이 연구 가치를 높입니다. 국가기록원의 대한천일은행 사료 소개에는 장부별 성격이 자세히 나옵니다.

대한천일은행 역사와 현대 금융의 연결을 표현한 창작 콜라주 이미지

대한천일은행 기록물 75점은 무엇을 말해 주나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대한천일은행의 창립 및 회계 관련 기록물은 2014년 국가지정기록물 제11호로 지정됐습니다. 모두 19건 75점으로, 창립 과정의 문서와 실제 회계 자료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유물 목록 같지만, 은행을 세운 이유와 운영한 방법이 함께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구분 규모 살펴볼 자료 알 수 있는 내용
창립·운영 관련 문서 12건 18점 창립청원 및 인가서, 정관, 지점 설치 자료 설립 목적, 인가 절차, 조직과 영업 확장
회계 관련 문서 7건 57점 정일기, 장책, 주회계책, 세금출납통장 거래 기록, 회계 처리, 조세 취급과 결산
전체 19건 75점 창립 문서와 회계 사료의 묶음 대한제국기 은행의 설립부터 실무까지

창립청원서와 인가서는 설립의 의도를 남깁니다. 반대로 장부는 은행이 실제로 어떤 거래를 다루었는지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둘을 함께 읽으면 ‘민족자본을 육성하려 했다’는 목표와 ‘현장에서 어떤 금융업무를 했나’라는 실행 사이를 연결할 수 있죠. 연구자들이 장부를 따로 떼어 깊이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저는 기록물의 가치를 판단할 때 오래됐다는 사실보다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함께 남아 있는지를 더 보게 됩니다. 거래의 시작부터 결산까지 이어지는 여러 종류의 장부는 당시 은행 경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니까요. 숫자와 기록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근대의 가게와 상인들이 실제로 겪은 돈의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대한천일은행에서 지금의 우리은행까지 이어진 연혁

오늘 우리가 쓰는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이 1899년부터 계속 같은 모습으로 유지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은행 공식 연혁에는 1909년 근대식 은행 본점 광통관 신축,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상호 변경,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의 변경이 기록돼 있습니다. 1999년에는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한빛은행이 출범했고, 2002년 5월 20일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127년의 역사는 어느 한 회사 이름만의 연속이 아니라 시대마다 조직과 이름이 달라진 과정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은행을 둘러싼 금융 환경과 운영 권력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민족자본 은행으로 출발했다’는 점과 이후 모든 시기가 같은 성격이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그 차이를 의식하며 읽어야 금융사가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광통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대한천일은행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는 건축물이며, 현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사용되는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건물의 긴 생명과 조직의 여러 차례 변화를 같이 보면, 오래된 금융기관의 정체성이 건물·서류·사람의 기억에 나뉘어 남는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자세한 날짜는 우리은행 공식 연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천일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이어진 세월을 표현한 창작 역사 콜라주

우리1899 역사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자료와 관람 정보

오래된 장부 이야기를 읽고 나면 진짜 문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은행은 서울 중구 본점 지하 1층에 은행사박물관을 재단장한 역사 공간 ‘우리1899’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름의 1899는 대한천일은행의 창립 연도를 가리킵니다. 창립 관련 자료와 은행의 시대별 변화를 살펴보는 전시가 마련돼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가족에게도 좋은 방문 주제가 될 듯합니다.

주소는 서울 중구 소공로 51 우리은행 본점 지하 1층입니다. 공식 관람안내 기준 운영시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마지막 입장은 오후 5시 30분입니다. 일요일과 법정공휴일, 근로자의 날은 휴관하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10명 이상 단체나 전시 해설을 원한다면 사전예약이 필요하다는 안내도 있습니다.

본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 관람객에게는 무료 주차 1시간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다만 전시물에 손을 대거나 허가받지 않은 상업 촬영을 하는 일은 제한돼 있습니다. 방문 전 우리1899 공식 관람안내의 휴관 공지와 예약 조건을 살펴보면 동선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책에서 장부 사진만 보는 것보다 공간에서 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는 경험이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자주 묻는 질문

Q. 대한천일은행은 우리은행의 전신인가요?

네. 우리은행의 공식 연혁은 1899년 1월 30일 대한천일은행 창립을 출발점으로 기록합니다. 이후 조선상업은행, 한국상업은행, 한빛은행을 거쳐 오늘날 우리은행의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Q. 송도사개치부법은 서양식 복식부기와 똑같은가요?

둘 다 거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복식부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록 방식과 역사적 배경은 다릅니다. 송도사개치부법은 개성상인의 전통적인 회계 관행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Q. 대한천일은행 관련 기록물은 몇 점인가요?

국가기록원이 소개하는 창립 및 회계 관련 기록물은 총 19건 75점입니다. 그중 창립·운영 관련 자료가 18점, 회계 문서가 57점입니다.

Q. 우리1899 역사관은 일요일에도 관람할 수 있나요?

아니요. 공식 안내상 일요일은 휴관일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에 무료 관람할 수 있으며, 마지막 입장은 오후 5시 30분입니다.

출처와 참고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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