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U가 공급망 실사법, 넷제로 산업법 등 4가지 핵심 ESG법안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미국도 지난 3월, 기업 기후 공시 의무화 규칙을 통과시키는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이 ESG 공시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건설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나 안전 및 인권 문제, 협력업체 관리와 같은 공급망 관리 등 ESG는 건설 전 과정에 규제로 다가올 전망입니다. 이번에는 해외 및 국내의 ESG 규제 동향과 국내 기업들의 대응 현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주요국 ESG 공시 기준 제정 사례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의 필요성으로 대두된 ESG(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SG 공시 의무가 본격화되는 2026년을 2년 여 앞둔 현재, 주요국들은 ESG 공시 기준 제정에 나섰습니다.
1) EU
EU는 최근 핵심 ESG 법안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넷제로 산업법(NZIA), 메탄 배출 제한 가스 수입법, 에코 디자인 규정으로 총 4가지인데요. 이중 특히 집중할만한 법안은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EU 공급망 실사법으로 불리는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은 2027년부터 기업의 인권과 환경 실사를 순차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입니다. 기업의 인권 및 환경 피해를 모니터링하고, 예방 또는 구제를 위한 위험 기반 시스템을 도입, 실행 의무화를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 ‘EU 공급망 실사법’은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금융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군에 적용됩니다. 역외 기업의 경우 EU 내 매출액이 4억 5,000만 유로, 한화로는 6,600억 원을 초과하면 최종 모기업이 공급망 실사법에 따른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현재 EU로 수출을 하는 국내 기업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해당 규제에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기업의 경우 EU 수출액이 4억 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곳이 적지 않고, 뿐만 아니라 연좌제처럼 모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관계사, 공급망 내 모든 중소기업에까지 지침 준수의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2) 미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 기후 공시 의무화 규칙’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2026년부터 유동시가총액 7억 달러 이상 상장사는 2026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해야 하고, 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홍수나 산불 등 기후 관련 재해 위험 가능성도 분석해 공표해야 합니다. 또한 기후가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의 총액이 세전 이익 또는 시가총액 1%를 초과하는 경우, 재무제표에 직접 반영된 금액을 공시해야 할 의무가 부여됩니다.
3) 일본, 싱가포르, 중국
일본과 싱가포르도 2025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시한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에 의거, ESG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역시 2026년부터 대기업들의 ESG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며, 상장 기업을 위한 새로운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을 발표하는 등 아시아 국가 역시 ESG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2. 국내 ESG 공시 동향
우리나라 역시 2021년 녹색금융 추진계획을 시작으로 2023년에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설립하는 등 ESG 정보 공시 의무화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상장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의무화를 추진 중이지만, 계획이 일부 수정되며 의무화 시점이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자산총액 2조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에는 전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2023년 10월 ‘ESG 금융추진단’ 제3차 회의에서 주요국 ESG 공시 일정 등을 고려해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겠단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제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제도를 도입하여 상장사가 지배구조 핵심원칙 준수 여부를 공시하여 자율적으로 경영 투명성을 유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공시 의무는 2019년 자산규모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6년에는 코스피 전 상장사에 의무화될 계획입니다.
더불어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는 등 환경과 안전 측면에서도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국내 건설 업계 반응
업역을 막론한 ESG 바람은 건설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가 30세대 이상 민간공동주택으로 확대됩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 건설 업계에서는 적용 유예의 목소리를 내비쳐왔으나, 유예 법안이 본안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된 상황입니다. 하여 대부분의 건설사가 안전 및 보건 관리 체계 구축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SMR(소형모듈원전) 등 해외 원전 시장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은 EU 공급망 실사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요.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등 동유럽 원전 수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은 자사는 물론 협력사들의 ESG 경영진단, 컨설팅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생산품의 85% 이상을 수출하는 HD현대건설기계 역시 EU 공급망 실사법에 대비하며 협력사 지원에 나섰는데요. HD현대인프라코어는 협력사인 한양 정밀의 ESG 경영 자가진단 컨설팅 및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HD현대인프라코어를 포함한 현대건설기계부문 3개 회사는 2023년 300곳의 협력사에 ESG 경영진단, 컨설팅 지원을 해왔습니다. 올해는 지원 대상 협력사를 665개 사로 확대하고, 현장실사 대상 협력사도 60곳에서 123곳으로 대폭 늘린 바 있습니다.
4. ESG 역량 강화 기업 사례
1) 삼성물산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1년 3월부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작업중지권은 말 그대로 작업 중 급박한 위험이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해를 예방하는 안전제도입니다. 삼성물산은 자체 집계 결과 작업중지권 보장 이후 휴업재해율(근로자가 1일 이상 휴업하는 재해 발생 비율)이 매년 15%씩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현장 위험 발굴 어플리케이션 S-TBM을 개발하여 간편하게 작업중지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2) DL이앤씨
DL이앤씨는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ESG 경영 기조에 대비하여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ESG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ESG의 기본 개념부터 공급망 실사법, Scope 3로 불리는 간접 탄소 배출 등 최신 이슈와 사례를 소개하며 본격적인 ESG 경영 전환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불어 ESG 워킹그룹과 이사회 산하 위원회, 실무 협의체 등을 신설했습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ESG 경영 내재화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창출하는 ESG 혁신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3) 포스코이앤씨
포스코이앤씨는 커피슬러지(커피찌꺼기)를 이용한 친환경 조경 토양 개량제 ‘RE:CO 소일’을 개발하고, 조경공사 현장에 사용하는 등 친환경 기술 도입에 나섰습니다. 원두의 99.8%는 찌꺼기가 되어 폐기되는 것에 착안, 이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친환경 토양 개량제는 2023년 말부터 공동주택 조경공사 현장에서 사용 중이라고 하는데요. 커피 슬러지 활용으로 연간 43톤의 탄소가 저감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4) SK에코플랜트
SK에코플랜트는 폐기물 및 자원순환 관리 플랫폼인 ‘웨이블 서큘러’ 서비스를 제공 중입니다. 웨이블 서큘러는 연간 목표 배출량, 재활용률, 환경인증 획득 등의 ESG 환경 경영 성과 지표 관리를 지원하는 서비스입니다. SK에코플랜트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폐기물 통합관리 서비스’ 계약을 맺고 전국의 쿠팡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본 계약으로 SK에코플랜트는 기존의 폐기물 수집, 운송 및 배차 관리 지원을 넘어 최종 처리까지 책임지게 됐습니다.
ESG 경영이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범국가적 과업이 된 지금, 국내외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건설 기업들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