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선 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 시기에 전국의 집값은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급락을 어느 정도 겪은 후에는 지역과 주택 종류에 따라 가격 흐름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어떤 집은 다시 올랐고, 어떤 집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한 거예요. 이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며 본격적인 반등세가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오른 집값을 고려하면, 아직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같은 세상을 사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다른 분석을 하게 만든 주요 부동산 지표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부동산 시장을 한눈에 보려면?
일반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진단할 때 많이 사용되는 지표는 주택 거래 가격의 변화, 거래량, 매물의 수 등입니다. 이 지표들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거래 가격이 오르거나 거래량이 늘어난다면? 시장이 회복세라는 뜻일 겁니다. 집주인이 부동산에 내놓은 매물이 점점 늘어난다면, 팔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그만큼 팔리지 않고 있다는 거니까 시장의 둔화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는 집값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전세 시장 관련 지표를 함께 참고해요. 집값 대비 전세 보증금의 비율을 뜻하는 ‘전세가율’은 높아질수록 전셋값이 집값에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세가율이 높아질 때는 향후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전세가율이 오를수록 ‘이 정도면 그냥 집을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가격 동향이나 시세 등 부동산 통계를 집계하는 대표적 기관은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두 곳입니다. 그리고 이 조사기관들은 단순한 가격이나 거래량 외에 각종 부동산 지수를 집계해서 사람들에게 꾸준히 정보를 제공합니다. 시장이 매도우위인지 매수우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 전문가들의 가격 전망을 집계한 지수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통계가 존재하겠지만, 이 정도가 핵심적인 부동산 시장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대표적인 주택 시장 지표들
① 주택 가격 동향 : 일주일 단위로 지역별‧주택 종류별 집값 변화를 집계.
② 주택 거래량 : 실제 거래가 이뤄진 횟수. 많아질수록 부동산 호황기.
③ 매매수급지수‧매수우위지수 : 팔려는 사람이 많은지, 사려는 사람이 많은지 집계.
④ 매매가격 전망지수 : 전국 6000여 명 공인중개사의 향후 2~3개월 집값 전망 조사.
⑤ 전세가율 :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 높아질수록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음.
⑤ 선도아파트 50지수 : 각 아파트 단지의 총 가격 합(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전국 상위 50개 단지를 조사한 수치. 아파트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짐.
2.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락기다’ ‘반등기다’라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앞서 언급한 지표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격변동과 거래량, 전세가격을 보면, 전국 집값을 이끄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반등세가 감지됩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11주 연속 올랐습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3월과 4월에 모두 4,000건을 넘어서 지난 2021년 8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전셋값은 작년 5월 넷째 주 이후 1년 넘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매물의 숫자는 ‘가격 하락’을 가리킵니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3년 전 4만 5000여 건에 불과했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 5,000여 건까지 늘어났습니다. 역대 최다 수준이라고 해요. 그만큼 집을 팔기 위해 내놓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숫자는 상대적으로 작다는 뜻입니다. ‘집값이 조금 반등했을 때 팔자’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사는 사람이 적어서 매물이 쌓인다면, 앞으로 집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주요 부동산 통계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할 만도 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보면 대체로 ‘반등론’ 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듯 보입니다. 일단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확실히 오른 데다가, 거래도 확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3. 아직은 ‘불황’ 가리키는 경매 지표
하지만 최근 들어 하락론에 강하게 힘을 싣는 지표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경매 지표’입니다. 부동산 경매는 건물이나 땅을 가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법원에 출석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이 낙찰받는 방식입니다.
경매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부동산을 어쩔 수 없이 파는 사람들의 수’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경매 건수가 늘어날수록 빚을 감당하지 못한 부동산 소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아마 3~4년 전부터 부동산 급등기에 최대한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산 ‘영끌족’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만약 정말 무리한 선택을 했던 사람이 많다면, 금리 상승기에는 경매 건수가 늘어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실제 요즘 상황은 어떨까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국의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4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었다고 평가받는 2013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30%가량 늘었습니다. 경매 신청 건수는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을 빌려 갔는데 안 갚으니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경매에 부쳐달라’고 요청한 숫자입니다.
경매 신청 후 돈을 빌린 사람이 얼른 빚을 갚으면, 실제 경매 입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실제로 입찰까지 한 경매 진행 건수가 급증했습니다. 올해 1~5월을 기준으로 작년보다 2.2배나 늘었고, 2년 전과 비교하면 5배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경매 건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수치에는 주택 외에 다른 부동산도 포함돼 있지만, 경매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는 현상은 부동산 시장이 당분간 호황을 누리기 어렵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빚을 못 갚는 부동산 소유자들이 늘어나고, 싼값에 나오는 경매 매물도 늘어나는데 호황이 시작되긴 어렵겠습니다.
주택 거래 가격이나 거래량 등 주요 지표만 보면 이미 상승세로 돌아선 것처럼 보이는 부동산 시장.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락을 가리키는 지표들도 함께 쏟아지고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정답에 가까울까요? 앞으로 주요 지표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가끔 들여다봐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