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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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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휘릉’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


구리 동구릉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 ‘


휘릉





안녕하세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며칠 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을 답사하였는데


,


오늘은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구리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


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


조선 왕실 최대규모의 왕릉군이다


.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9


개의 능에


17





(





)


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가족묘다


.


총 면적이


191





5,890


제곱미터나 된다


.


동구릉은 사적 제


193


호로 지정되어 있다


.




1408


년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건원릉이라 이름한 뒤


, 1855





(


철종


6)


익종


(


翼宗


)


의 능인 수릉이


9


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


1.








徽陵


(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


의 개요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단릉


◎ 능의 조성


: 1688





(


숙종


14)











2.


능의 구성





휘릉은 조선


16


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


단릉 형식으로 봉분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


난간석에는 십이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다


.


능침 주변의 석양과 석호는 아담한 크기에 다리가 짧아 배가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이다


.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은


5


개로 배치하였다


.


조선 전기 왕릉


(


건원릉


~


헌릉


)


의 고석은 모두


5


개였다가 세종의 영릉 이후에는


4


개로 줄었는데


,


휘릉에 와서 다시 초기의 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


이는 건원릉의 예를 잠깐 따른 것으로


,


휘릉 이후의 왕릉에는 다시 고석을


4


개씩 배치하였다


.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


비각


,


홍살문 등이 배치되었다


.


휘릉 정자각은 다른 왕릉의 정자각과 달리 정전의 양 옆에 익랑을 추가하여 웅장함을 더하였다


.


3.


능의 역사


1688





(


숙종


14)


에 장렬왕후 조씨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


4.


장렬왕후


(


莊烈王后


)


이야기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


(1624





~ 1688





)


는 본관이 양주인 한원부원군 조창원과 완산부부인 최씨의 딸로


1624





(


인조


2)


에 직산현


(


충남 천안


)


관아에서 태어났다


.


1635


년에 인조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638





(


인조


16)


에 인조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


1649


년에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자의왕대비가 되었으며


,


효종


,


현종


,


숙종 대에까지 살아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


.


그 후


1688





(


숙종


14)


에 창경궁 내반원에서


65


세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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