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나더 라운드(DRUNK)>
Another Round. 2022
영화 <더 헌트>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췄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과
제65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매즈 미켈슨
의 특별한 음주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그 수상내역은 <더 헌트>를 훨씬 뛰어넘으며 매우 화려해서 도대체 얼마나 특별한 영화일지 기대가 많이 됐었다.
영화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귀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젊은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어나더 라운드
8.1 (2022.01.19 개봉)
▶ 수상내역
2022년
36회 고야상(유럽영화상)
2021년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국제장편영화상)
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외국어영화상)
46회 세자르영화제(외국어영화상)
41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외국어영화상)
44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북유럽영화 관객상)
2020년
33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외국어영화상)
33회 유럽영화상(유러피안 작품상, 유러피안 감독상, 유러피안 남우주연상, 유러피안 각본상)
47회 겐트 영화제(학생 관객상)
64회 런던 국제 영화제(작품상)
68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은조개상-남우주연상, SIGNIS상, Zinemaldia FEROZ 상)
술을 마시고 토하고 엉망진창으로 다소 지저분하지만 신이 나서 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교무회의가 열리는 학교로 그 장소를 옮기면서 이들이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임을 깨닫게 해 주었는데, 수많은 학생들이 훤한 대낮에 맥주상자를 들고 뛰면서 팀별로 진행되는 호수 경주대회를 보면서 덴마크에서는 미성년자의 음주가 허용되나 보다 예측할 수 있었고, 그래서 검색해 보니 16세 이상이면 음주가 허용된다고.
한편, 술에 취해 이마는 깨지고 길거리에서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어 아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집에 들어온 남편
마르틴(매즈 미켈슨)
을 보며 화가 난 아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친구들이랑 술 마셔도 난 관심 없어. 온 국민이 미친 듯 마시는 나라잖아”
이렇듯 음주문화에 관한 한 덴마크도 우리나라 못지않은 다소 과한 애주가의 나라임을 짐작케 했는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음주 스토리를 이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절친인
마르틴,
니콜라이,
톰뮈,
페테르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고등학교에서 각각 역
사,
심리학,
체육, 음악을 가르치며
교사로 재직 중인 마흔 즈음의 아저씨들이다.
시큰둥한 수업태도의 학생들에게는 인기 없고 지루한 교사로, 집에서는 가족들과도 소원해지면서 매력 없는 남편에 따분한 아빠로 자신감 잃고 어깨는 축 쳐진 그런 아저씨 말이다.
그렇게 우울하던 어느 날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모인 4명의 친구들은 샴페인에 보드카, 와인을 차례로 마시면서 술을 주제로 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발단은 심리학 선생님인 니콜라이의 위험해 보이는 발언으로부터다.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는 주장으로는 인간의 혈중알코올 수치가 0.05% 부족하단 거야. 와인 한두 잔 마신 상태를 항상 유지하라는 거지. 그러면 더 느긋해지고, 침착해지고, 음악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한대. 결국 더 대담해진다는 거지”
(참고로 핀 스코르데루는 실존인물이다)
사실 이 말은 자신감과 용기가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던 마르틴을 위한 조언이었고, 돌파구가 필요했던 마르틴은 친구의 말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학교 화장실에 숨어 몰래 술을 마시기 시작한 마르틴의 실험은 일단은 대성공이었다.
그의 수업시간은 이제 활기가 넘치고 학생들로부터의 인기와 신뢰도 되찾기 시작했으며,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뭔가 개선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본 마르틴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나머지 세 친구들까지 0.05% 음주 실험에 대거 동참하게 되는데…
에세이까지 준비하면서 처음엔 정말 학구적인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보이기도 했으며,
보다 열정적인 교사가 되기 위한, 보다 가정적인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 위한 건전한 의도였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 0.05%를
초과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위험한 도박과도 같다는 걸 선생님들은 정말 알지 못했던 걸까.
헤밍웨이는 다음 날 글 쓰는데 지장이 없도록 매일 8시까지만 술을 마시면서 걸작을 남겼고, 피아니스트 헤르포르트는 취한 것도 안 취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상태에서만 연주가 가능했다는 인용으로 더욱 동기부여가 된 친구들은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 단서조항을 달긴 했었다.
‘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면서
근무시간 중에만 마실 것,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엔 금주!’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우린 중독자인 건가?”
“아니야. 중독자면 우리처럼 통제해 가며 마시지 못해”
물론 출발은 괜찮아 보이기도 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를 뒤로 한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선생님들, 결정적으로 체육관 창고에 숨겨둔 술병이 발각되면서 학교도 선생님들도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되는데…
“정말 오랜만에 기분이 참 좋아. 뭔가 일어나고 있어. 취해 있지 않을 때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좀 더 차원 높은 뭔가가.”
힘없이 말하는 마르틴의 이 말이 내게는 절대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았고,
술에 의지해야만 자신감을 되찾고 변화되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많이 안타까웠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술로 시작된 이 영화가 끝도 없이 추락하여 그 마지막은 아마도 최악의 비극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바닥으로 침잠하지 않았다.
그들의 음주를 차마 응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만취한 아저씨들이
무거운 책임감과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는 덩달아 기분 좋아지고 즐거워졌더라는…
술에 취해 신이 난 학생들의 모습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번에는 고등학교 졸업으로 신이 난 학생들과 선생님들까지 한데 모여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그야말로 신나는 축제의 현장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OST 역시도 시작과 동일하게
덴마크 트리오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가 흐르면서 동시에 화룡정점으로
댄서 출신 배우 ‘매즈 미켈슨’의 발레 댄스까지 곁들여지면서 와우~ 정말 근사한 수미쌍관의 엔딩을 만들어냈다.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로운 모습의 마르틴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