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 작년의 8배… 올 들어 2배
올해 10% 추락 ‘아날로그 금’과 대비
국내선 개당 7900만 원선 오가
국제시세보다 20% 비싼 셈
광풍 불던 2017년엔 40~50%
업비트 이용자도 한 달 새 3배
‘아날로그 금’은 기운이 없는데 ‘디지털 금’은 펄펄 나네
비트코인의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7일 오후 3시 기준으로 비트코인은 미국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 데스크에서 개당 5만 8600달러 안팎을 오갔다. 지난 3일에는 장중 6만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올해 들어서만 가격이 2배로 뛴 것이다. 지난해 초(7180달러)와 견주면 8배를 웃돈다. 반면, 국제 금값은 6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트로이온스당 1741.5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불과 8개월 전에 기록한 사상 최고가(2051.5달러)에서 15.1%(310달러) 낮아졌다. <블룸버그>는 “금값이 올해 1분기에만 10% 떨어졌는데, 과거 50년 동안 이보다 나빴던 적은 8차례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 ‘금에서 비트코인으로’ 자금이동
금값을 누르고 있는 요인으로는 금리 상승이 우선 꼽힌다. 최근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가치도 덩달아 밀어올렸다. 금은 이자나 배당이 나오지 않는 데다 ‘숙명의 라이벌’인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고개를 숙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비트코인 가격은 금리나 물가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강세를 보이는 중이다.
비트코인이 ‘종이화폐’의 대안자산인 금의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단지 유동성 장세에 무임승차한 것뿐이라 폄하되던 때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분기 동안 비트코인 관련 펀드로 7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들어온 반면,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선 200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최근 차입투자 청산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던 한국계 빌황의 아케고스와 같은 ‘패밀리 오피스’들도 운용자산을 금에서 비트코인으로 옮기는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6억 7천만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런던의 한 패밀리 오피스의 설립자가 지난해부터 비트코인 투자 비중을 늘려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 디지털 금이냐, 아날로그 금이냐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희소성’이라는 수급 논리를 편다. 비트코인은 전체 발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돼 있는 데다 4년마다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맞는다. 비트코인의 신규 공급이 50% 감소하는 것이다. 또 공급량의 약 90%는 이미 채굴된 상황이다. 비트코인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공급은 줄어드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 투자자들은 ‘제한된 공급량’ 이야말로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기에 부적합한 사유라고 반박한다. 화폐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공급돼야 한다는 경제학 논리가 근거다.
예컨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추구했던 세계 화폐 ‘방코르’는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유동성을 공급해 인플레도 디플레도 최소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플레는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주장한 밀턴 프리드먼이 통화 증가율을 고정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이들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공급이 안정적인 건 금의 장점이다.
이원주 키움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이 미래에 화폐로 쓰이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필연적으로 대형 디플레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가격의 토대를 두고도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시장가격이란 어떤 대상의 스토리에 대한 집단적 믿음의 총합으로,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신뢰하는 한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편다. 지금과 같은 암호화폐 가격 상승은 이러한 동의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반면 회의론자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다른 누군가가 더 비싼 가격에 암호화폐를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투기적인 수요가 증발할 것이라고 봐서다. 보석 가공과 기술 산업 등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금과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이러한 시각차는 세대별 성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포브스>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밀레니엄 세대(1982~2000년생)의 암호화폐 보유 비중은 27%에 달한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1944~1964년)는 3%에 그쳤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지 않은 베이비부머들은 가치저장 수단으로 여전히 금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김치 프리미엄’ 부활의 의미는
7일 오후 3시 현재 국내 거래 업체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의 거래가격은 개당 7900만 원 선을 오갔다. 같은 시각 국제 시세를 원화로 환산한 가격(6540만 원)보다 20%가량 비싼 셈이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부활한 것이다. 비트코인은 한때 광풍이 불었던 지난 2017년에도 국내에서 40~50% 비싸게 거래된 바 있다. 업비트에 따르면 지난달 앱 이용자는 320만 명으로 1월(119만 명)의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한대훈 에스케이(SK) 증권 연구원은 “해외 시세와 가격차를 좁히는 과정에서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조정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수요가 많아 급격한 추세전환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