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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9월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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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답사] 조선왕릉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현릉’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답사


]


조선왕릉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 ‘


현릉





안녕하세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며칠 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을 답사하였는데


,


오늘은 조선왕릉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img


1.


구리 동구릉은


?


구리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


기의 능이라는 뜻


으로


,


조선 왕실 최대규모의 왕릉군


이다


.


즉 동구릉에는


9


개의 능이 있어 조선 왕조


42


개 능의


20


퍼센트가 포함될 정도로 비중이 남다르다


.


동구릉은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9


개의 능에


17





(





)


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가족묘다


.





9





17





(





)


의 왕과 왕비가 안장되어 있으며


,


총 면적이


191





5,890


제곱미터나 된다


.


동구릉은 사적 제


193


호로 지정되어 있다


.




1408


년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건원릉이라 이름한 뒤


, 1855





(


철종


6)


익종


(


翼宗


)


의 능인 수릉이


9


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


img


img


img


2.


현릉


顯陵


(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





.


현릉의 개요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동원이강릉




.


능의 조성


: 1452





(


단종 즉위


), 1512





(


중종


7)





.


현릉의 구성


현릉은 조선


5


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


현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


同原異岡陵


)


의 형태이다


.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


(


서쪽


)


이 문종


,


오른쪽 언덕


(


동쪽


)


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


img


img


img





.


현릉의 능제


현릉의 능제는





국조오례의





의 제도를 따랐다


.


문종의 능 병풍석의 무늬는 이전의 영저와 영탁대신 구름무늬로 바뀌었고


,


혼유석 받침대인 고석의 수량도


4


개로 줄었다


.


능침 하계에는 무석인과 석마를 배치하였고


,


중계에는 문석인과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


현덕왕후의 능침은 문종의 능침과 같은 상설로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을 생략하였다


.


현릉 이후부터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는데


,


그 이유는 임금의 치적이 국사


(


실록


)


에 실리기 때문에 굳이 세울 필요가 없다는 논의 때문이었다


.





.


현릉의 역사


1452





(


문종


2)


에 문종이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


(


세조


),


황보인


,


김종서


,


정인지 등의 대신을 비롯하여 풍수지관이 현지를 답사하고 건원릉 남동쪽에 현릉을 조성하였다


.


처음 문종은 세종의 구 영릉


(


서울 내곡동 헌릉 서쪽


)


근처에 묻히기를 원하였으나 자리가 좋지 않아 현재의 자리로 정하였다


.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세상을 떠나기


11


년 전에 왕세자빈 신분으로


1441





(


세종


23)


에 먼저 세상을 떠나


,


안산의 소릉


(


昭陵


)


에 모셔졌었다


.


이후 현덕왕후는 세조 즉위 후 단종 복위 사건에 친정 어머니와 남동생이 연루되는 바람에 폐위되었다가


, 1512





(


중종


7)


에 복위되어 다음 해인


1513





(


중종


8)


에 문종의 현릉 동쪽 언덕으로 사후


72


년만에 왕의 곁으로 능을 천장하였다


.


이 때 두 능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


이유 없이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


문종 이야기


문종


(1414~1452,


재위


1450~1452)


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첫째 아들로


1414





(


태종


14)


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


아버지 세종이 즉위하자


1421


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


세종재위 말년에 부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




대리청정기간에 문무 관리를 고르게 등용하고 언로를 자유롭게 열어 민정파악에 힘쓰는 등 나라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에 따르면 문종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말이 적고


,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


또한 문종은 천문에 능통하였으며


,


측우기도 발명하였다


. 1450


년에 조선 최초로 적장승계의 원칙에 따라 세종을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


재위 기간 내에는





동국병감


(


東國兵鑑


)





이 출간되었고


,





고려사


(


高麗史


)











고려사절요


(


高麗史節要


)





등이 편찬되었다


.


한편 병제


(


兵制


)


를 정비하여


3


군의


12


사를


5


사로 줄인 반면


,


병력을 증대시키고 각 병종을


5


사에 배분하였다


.


그러나


1452





(


문종


2)


에 경복궁 천추전에서


39


세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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