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
구리 동구릉
18
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 ‘
숭릉
’
안녕하세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얼마 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을 답사하였는데
,
오늘은 그중에서
18
대 조선 현종과 현종의 비 명성왕후의 능인
‘
숭릉
’
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구리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
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
조선 왕실 최대규모의 왕릉군이다
. 9
개의 능에
17
위
(
位
)
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가족묘다
.
동구릉은 사적 제
193
호로 지정되어 있다
.
1408
년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건원릉이라 이름한 뒤
, 1855
년
(
철종
6)
익종
(
翼宗
)
의 능인 수릉이
9
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1 img](https://blog.kakaocdn.net/dn/0DGNB/btrMNMBWjtp/LxminnJvDFjBUOp5Snn9BK/img.jpg)
1.
숭릉
崇陵
(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
의 개요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쌍릉
◎ 능의 조성
: 1674
년
(
숙종 즉위
), 1684
년
(
숙종
10)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2 img](https://blog.kakaocdn.net/dn/BaAO6/btrMPOyha72/SQpRPNGYZlVIdcgf387iU0/img.png)
2.
능의 구성
숭릉은 조선
18
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
숭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
(
雙陵
)
형식이다
.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였으며 능침 앞에는 혼유석이 각각
1
좌씩 놓여 있다
.
그 밖의 석양
,
석호
,
망주석
,
문무석인
,
석마 등은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형태로 배치되었다
.
숭릉의 석물은 효종의 구 영릉
(
寧陵
)
의 석물을 다시 사용한 것으로
,
영릉
(
寧陵
)
이 여주로 천장될 때 석물을 묻었다가 다시 꺼내 사용하였다
.
망주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
위쪽에는
‘
세호
’
라고 불리는 작은 동물 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
능침 아래에 있는 정자각은 조선왕릉
40
기 중 유일하게 남은 팔작지붕 정자각이며
,
보물로 지정되었다
.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3 img](https://blog.kakaocdn.net/dn/o1ybG/btrMRqwVGdQ/mlX8tblzk5kjpodkkMhJ61/img.jpg)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4 img](https://blog.kakaocdn.net/dn/lxn93/btrMRrJmKCw/fgHs9XrocuM7dTu8K43PjK/img.jpg)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5 img](https://blog.kakaocdn.net/dn/esah0g/btrMRGl8ISY/r3PkcAWCVkAgY4LeCaomI0/img.jpg)
![[세계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18대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숭릉’ 6 img](https://blog.kakaocdn.net/dn/baLtia/btrMOnOWozT/vwvkQJykcte6tyugkdnHIK/img.jpg)
3.
능의 역사
1674
년
(
현종
15)
에 현종이 세상을 떠나
,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
숭릉을 조성할 때
8
도의 승군
2,650
명을 징발하여 능을 공사하였다
.
숭릉의 혈을 파기 위해 겉흙을 걷어냈을 때 부도를 세우려 했던 흔적이 나왔으나
,
깊이가
3
척밖에 되지 않아 지맥을 손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광중 밖이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였다
.
숭릉 조성 후
9
년이 지난
1683
년
(
숙종
9)
에 명성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
,
그 다음 해 숭릉에 쌍릉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
4.
현종
(
顯宗
)
이야기
현종
(
재세
: 1641
년
~ 1674
년
,
재위
: 1659
년
~ 1674
년
)
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아들로
1641
년
(
인조
19)
에 청나라 심양 관사에서 태어난 조선 역대 임금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
1645
년
(
인조
23)
에 인조의 세자인 소현세자가 급서하고 아버지 봉림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되는 동시에 원손이 되었고
, 1648
년
(
인조
26)
에 왕세손이 되었다
.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가 된 후
1659
년에 왕위에 올랐다
.
재위 기간 동안에 함경도 산악지대를 개척하고
,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된 북벌정책을 중단시켰으며
,
호남 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
동철활자
10
만 자를 주조시켰으며
,
천문 관측과 역법 연구를 위하여 혼천의를 다시 제작하게 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그러나 두 차례의 예송논쟁으로 붕당의 싸움이 치열하기도 하였다
. 1647
년
(
현종
15)
에 창덕궁 재려에서
34
세로 세상을 떠났다
.
5.
명성왕후
(
明聖王后
)
이야기
명성왕후 김씨
(
재세
: 1642
년
~ 1683
년
)
는 본관이 청풍인 청풍부원군 김우명과 덕은부부인 송씨의 딸로
1634
년
(
인조
12)
에 장통방
(
현 서울 종로
2
가 관철동
)
사저에서 태어났다
.
1651
년
(
효종
2)
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
현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
현종 사이에
1
남
(
숙종
) 3
녀
(
명선공주
,
명혜공주
,
명안공주
)
를 낳았다
.
명성왕후는 지능이 뛰어나고 성격이 과격했다고 전해진다
.
그 때문에 궁중의 일을 다스림에 있어서 거친 처사가 많았고 공공연히 조정의 정무에까지 간여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그 후
1683
년
(
숙종
9)
에 창덕궁 저승전에서
42
세로 세상을 떠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