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워런 버핏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투자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거나 심지어 오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버핏은 집중 투자를 강조하고 코카콜라, 질레트 등 소비재 산업을 좋아하며 거의 영구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또 버핏은 레버리지 이용을 싫어하고 파생상품을 혐오하며 DCF(현금흐름할인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능력범위 안에만 머무는 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버핏에 대해서 맞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면도 많습니다. 버핏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버핏은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얼핏 보면 버핏은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버핏은 자산의 99%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으로 갖고 있습니다. 집중 투자 같지만 버크셔 자체가 지주회사로서 가이코(Geico) 등 보험부문, BNSF(철도),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를 자회사로 갖고 있으며 애플 주식을 1,600억 달러어치 넘게 가지고 있는 걸 고려하면 미국 경제에 골고루 분산 투자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 버크셔 주총에서는 한 주주가 애플이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로 위험 수준에 근접했다며 버핏의 견해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버핏은 버크셔의 포트폴리오에는 철도회사, 에너지회사, 씨즈캔디 등 온갖 회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애플 비중은 35%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참고로 1분기말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애플 비중은 46.4%로 질문자가 말한 35%보다 높았습니다.
버핏의 말은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가 아닌, 자회사를 포함한 전체 버크셔 사업 부문을 놓고 보면 애플 비중이 더 낮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9일 버크셔 시총이 약 7,800억 달러인데, 애플 지분가치가 1,600억 달러니까 버크셔의 애플 비중은 20%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버핏이 싫어한 건 분산을 위한 분산투자이며 단순히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중과 분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좋은 주식이 보이면 사고 아니면 팔았을 뿐입니다. 집중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분산투자 중인 버핏의 진실이었습니다.
2. 버핏은 영원히 보유한다?
버핏은 장기 보유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버핏은 “10년 이상 보유할 생각이 없으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마라” “우리가 선호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버핏의 평균 보유기간은 약 27.3개 분기입니다. 거의 7년입니다. 버핏의 대표 투자종목인 코카콜라(1988년~ )는 투자기간이 3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1993년~ )는 투자기간이 30년, 무디스(2000년~ )는 투자기간이 23년에 달합니다.
그런데 버핏이 모든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3분기 버핏은 글로벌 1위 파운드리업체 TSMC 주식을 41억 달러어치 매입했지만 반년도 안 돼서 모두 팔아 치운 적이 있습니다. 버핏은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식을 팔았다고 말했는데요, 대만보다는 일본에 투자할 때 마음이 더 편하다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버핏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매도할 필요가 없는 주식을 사서 영구 보유하는 것입니다. 참, TSMC의 경우를 보면 지정학적 리스크도 없는 게 낫습니다.
3. 버핏은 소비재 산업을 좋아한다?
버핏은 소비재 산업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버핏이 1972년 고급 초콜릿업체 씨즈캔디를 인수하고 코카콜라, 질레트 등 소비재 업체에 계속 투자해 온 건 맞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금융업에도 끊임없이 투자해 왔습니다. 2001년 1분기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에서도 금융업 비중은 43.1%로 소비재(47%)에 육박할 정도로 컸습니다.
최근에는 소비재 업종 비중이 낮아졌는데요. 올해 1분기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는 금융업 비중이 22.3%로 소비재 비중(13.2%) 보다 높습니다. 버핏이 옥시덴탈페트롤리움, 쉐브론 투자를 늘리면서 에너지업종 비중도 10.7%를 기록했습니다.
IT업종 비중은 무려 49.3%를 기록했습니다. 애플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서 애플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버핏은 애플을 소비재 기업으로 보고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애플을 IT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버핏이 소비재를 좋아한다는 말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버핏에게 중요한 건 아이폰을 만드는지 코카콜라를 만드는지가 아니라 경제적 해자를 보유했는지입니다.
4. 버핏은 레버리지를 싫어한다?
사실 버핏은 남의 돈을 빌려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매년 주주서한 앞부분에서 버핏은 ‘플로트'(float)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밝히는데요, 2022년에는 170억 달러 증가한 1,64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 플로트가 바로 버핏이 빌려 쓰는 돈입니다.
버크셔의 플로트 대부분은 자동차 보험사 가이코, 세계적 재보험사 제너럴리(General Re) 등 보험 자회사를 통한 보험료입니다. 즉, 보험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시점과 보험금을 청구하는 시점 사이에 보험사가 보유하는 돈을 장기 투자 종잣돈으로 활용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 버핏이 투자했던 블루칩 스탬프(Blue Chip Stamps)는 버핏이 일찍부터 남의 돈을 빌려 쓰는 데 관심을 쏟았음을 나타냅니다. 블루칩 스탬프는 슈퍼마켓 등 소매점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쿠폰을 발행하는 회사였습니다. 소비자는 쿠폰을 모아서 나중에 사은품으로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쿠폰을 발행하고 받은 현금을 소비자에게 사은품으로 돌려줄 때까지 가지고 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버핏은 블루칩 스탬프에 투자했습니다. 이 때도 플로트에 주목한 거지요. 이처럼 버핏은 공짜처럼 쓸 수 있는 돈을 찾아다녔습니다. 단지 무분별한 레버리지를 싫어할 뿐입니다.
5. 버핏은 파생상품을 싫어한다?
버핏이 자주 파생상품을 비판하는 건 맞습니다. 2008년 주주서한에서도 파생상품 때문에 미국 금융 시스템의 레버리지와 위험이 극적으로 높아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일찍부터 버핏은 파생상품을 ‘금융의 대량 살상무기’라고 비난해 왔습니다.
그런데 버핏이 비난한 건 금융공학의 결과로 탄생한 무분별한 파생상품입니다. 버핏은 1998년 재보험사 제너럴 리를 인수하고 나서 2만 건이 넘는 파생상품 계약을 오랜 세월에 걸쳐 정리하면서 치를 떤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잘 알고 나니, 나의 애정이 예전과 같지 않구려”라는 컨트리 곡 가사로 버핏은 파생상품 계약을 정리한 후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이런 버핏이 파생상품 계약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2000년대 중반에 S&P 500 지수에 대한 풋옵션을 매도한 겁니다. 만기기간이 15~20년에 달할 정도로 긴 초장기 파생계약이었습니다. 버핏이 S&P 500 지수에 대한 풋옵션을 매도했다는 건 미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하락하지 않을 것에 베팅했다는 겁니다. 버핏 다운 베팅입니다.
버크셔의 가이코, 제너릴 리 등 보험 자회사가 파는 보험도 파생상품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버크셔는 재난보험이나 테러보험도 팔고 있는데요, 이익의 원천은 대중의 오해입니다. 사람들이 과도한 공포심으로 인해 높은 돈을 지불하고 보험을 사려고 할 때 버핏은 발생 확률과 손실 리스크를 고려한 후 보험을 판매합니다.
6. 버핏은 DCF를 사용하지 않는다?
DCF(Discounted Cash Flow·현금흐름할인법)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미래 현금흐름을 적당한 할인율로 할인하는 방법입니다. 성장률은 미래현금흐름 예측 등 DCF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버핏이 DCF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버핏도 DCF를 활용합니다. 지난 3월 ‘워런 버핏: 투자자와 기업가'(Warren Buffett: Investor and Entrepreneur)을 출판한 토드 핑클 미국 곤자가대학 교수는 버핏에게 기업 가치평가를 사용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버핏이 “DCF”라고 대답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버핏은 미래현금흐름을 자의적으로 예측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측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업에만 투자하는데요, 미래 현금흐름, 성장률, 할인율을 예측하지 않고 과거 추세를 사용하기 때문에 틀리는 일이 적습니다.
7. 버핏은 능력범위에 안주한다?
버핏이 ‘능력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강조하는 건 유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로 버핏은 능력범위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버핏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능력범위를 넓혀왔습니다. 능력범위를 넓히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버크셔 주주총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종목 중 하나가 아마존과 구글입니다. 버핏은 일찍부터 아마존을 지켜봤지만, 아마존에 투자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특히 제프 베이조스가 소매와 클라우드 서비스 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점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버핏의 능력범위 확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는 IBM과 애플 투자입니다. 그때까지 IT기업에 투자하지 않았던 버핏은 2011년 IBM주식을 107억 달러어치 매수합니다. 버핏의 기대와 달리 IBM 실적은 하락했고 2018년 버핏은 거의 본전에 IBM을 모두 처분합니다. IT업종으로의 1차 능력범위 확대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버핏은 2016년 1분기부터 애플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IT업종으로의 2차 능력범위 확대 시도입니다. 2017년 버크셔 주총에서 한 주주가 기술주 전문가가 아니라면서 왜 기술주에 투자하는지 묻자, 버핏은 경제 특성 면에서 애플을 소비재회사로 간주하며 IBM과 애플 두 종목에서 모두 실패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이때 옆에 있던 찰리 멍거 부회장은 버핏이 애플을 매수한 건 매우 좋은 신호라면서 “버핏이 미쳤거나 지금도 배우고 있다는 신호”이며 자신은 배우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멍거의 예측은 옳았습니다. 버핏이 애플에 투자한 311억 달러는 약 1,600억 달러로 불어나며 버크셔 최대의 성공투자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