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삼성전자 글로벌 톱 위해 한국 기업이 세컨드 티어 돼야”
박정호 SKT 부회장, 국가 기간산업 위한 것이란 말에 하이닉스 인수 구조 만들어
“하이닉스 인수는 국가 경제를 위한 것이다. 재무 부담이 커 인수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영자는 멀리 봐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견지명이 그룹 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2011년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 인수 당시 내부 반대가 심하자 최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설득할 때 했던 말이다.
SK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불확실성이 커진 현재 최 회장의 리더십을 다시 보고 있다”라며 “10년 전 모두가 부정적이었던 SK하이닉스 인수가 지금은 ‘신의 한 수’가 됐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비수기인 1분기 영업이익 1조 3244억 원, 매출액은 8조 4942억 원을 기록하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5.6%, 18% 증가한 수치다.
SK하이닉스의 역사는 201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통해 SK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 인수는 당시 대기업에도 큰 부담이었다. 매각금액이 3조 원에 달했고, 인수 후에도 매년 수 조원의 설비 투자금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가 섣불리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인수 후보고 거론됐던 LG, GS, 한화 모두 인수설에 이름이 오르는 것조차 노골적으로 부담감을 드러냈을 정도다. 당연히 SK 내부에서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SK이노베이션 고위 관계자도 “당시 오너였던 최 회장이 CEO들에게 일방적으로 인수를 지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라며 “임원 회의에서 SK하이닉스 인수가 왜 필요한지, 본인이 어떠 비전으로 인수에 나서는지 CEO들을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CEO 가운데 가장 먼저 설득된 사람이 박정호 SK텔레콤 부회장이다. 최 회장은 임원 회의에서 “SK의 미래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을 위한 것”이라며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톱을 유지하려면 세컨티어도 한국 기업에서 받쳐줘야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 기업들이 함께 반도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SK하이닉스 인수 구조 및 사업 계획을 직접 최 회장에 보고하며 성공적으로 인수를 완료했다.
최 회장은 이후 ‘사회적 가치’, ‘딥 체인지’ 등의 경영 화두를 제시하며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 경영 기반을 일찍부터 다졌다. 2015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모두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ESG 경영이 대세다. 최 회장은 지난해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한 ‘파이낸셜 스토리’를 제시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란 투자자, 사장,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SK그룹의 각 회사 성장 전략을 제시해 신뢰를 높이자는 전략이다.
최근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비윤리적인 투자나 경영을 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시장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사업이 힘들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네덜란드 연기금 등 전 세계 ‘큰 손’ 들이 관련 기업을 압박하거나 글로벌 고객사들이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은 지배 구조 부문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그룹은 수펙스 추구협의회, 계열사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 자율성이 큰 편이다”라며 “SK그룹이 4대 그룹 가운데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는 데는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