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 재정 지원을 받아 파산만 모면하는 상태
시체가 되살아나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zombie)는 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부산행>, <월드워 Z> 등 영화에서 좀비들은 퀭한 눈으로 의식 없이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좀비기업(zombie company)은 무엇일까요?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데 정부나 채권단, 즉 은행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파산만 간신히 모면하고 있는 기업을 뜻합니다.
기업의 기본은 영업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어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비기업은 정부나 채권단 도움을 받아 간신히 회사를 운영해 목숨만 이어가는, 즉 연명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물론 아예 죽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업이 사실상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좀비기업이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이에 대한 설(設)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19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비기업을 국가경제를 망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 말 주식 가격과 부동산 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폭등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1990년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빠지는 이른바 ‘거품경제(bubble economy)’ 붕괴로 경제가 침체국면을 맞게 됩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문을 닫았으며, 이로 인해 일본은 10년 넘게 경제성장률이 0%대에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를 흔히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고 부릅니다.
일본 경제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자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여러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성장률이 2001년까지 평균 1.1%에 그치는 등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기침체를 거듭했습니다.
버블이 붕괴되자 일본 정부는 좀비기업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좀비기업을 한꺼번에 정리하면 소속 기업 종사자의 대규모 실직 등 경제적 충격이 크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와 채권단이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채권단은 이들 좀비기업에 각종 금융지원을 해줬습니다.
애초에 좀비기업이 경쟁력이 있었다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업체가 됐을까요? 좀비기업은 당연히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좀비기업을 지원한 은행 자금은 고스란히 부실채권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실채권은 은행 등 금융 기관이 빌려준 대출금 가운데 회수가 불확실한 돈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은행이 빌려준 대출금 가운데 은행이 되돌려 받을 수 없는 돈을 뜻하지요.
은행의 입장에서 부실채권이 늘면 우량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제대로 할 수 없죠. 그러면 우량기업에 대한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아 투자가 위축되고 우량기업이 경영난을 겪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게 마련입니다.
이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단 한푼의 이익도 내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국세청 국세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당기순이익이 ‘0원 이하’라고 신고한 법인이 26만 4,564개입니다.
이는 2016년(24만 916개)에 비해 무려 9.8%(2만 3,648개) 늘어난 것입니다. 또한 2012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기순이익이 0원이라는 얘기는 무슨 뜻일까요? 쉽게 설명하면 1년 동안 회사를 경영했지만 순이익을 전혀 남기지 못했거나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뜻입니다. 이와 함께 2017년 1년 동안 이익은 냈지만 이익이 1,000만 원이 넘지 않은 법인도 8만 5,468개였습니다. 순이익 0원 이하 법인에 이들까지 합치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3%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절반 이상의 법인이 한 달 평균 100만원도 안 되는 이익을 냈거나 손실로 인해 허덕였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한계기업이 결국 시장에서 정리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중견 조선업체 ‘성동조선’ 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8년간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아온 좀비기업 성동조선이 2018년 3월 결국 법정관리 신세가 됐습니다.
성동조선은 2017년 컨설팅업체 EY한영회계법인이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조사를 한 결과 청산가치(7,000억 원)가 존속가치(2,000억 원)의 세 배를 넘었습니다. 청산가치란, 현재 시점에서 기업의 영업활동을 중단하고 청산할 경우 회수 가능한 금액의 가치를 말합니다. 이에 비해 ‘존속가치’ 혹은 ‘계속기업가치’는 현시점에서 기업이 계속 영업을 할 경우, 회사의 자산을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성동조선은 청산하는 게 영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성동조선은 정부가 좀비기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입니다.
좀비기업을 국민의 혈세로 굳이 계속 살리는 게 경제를 위해 좋은 결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비록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데 따른 고통이 따르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혁신을 무기로 한 초(超) 혁신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좀비기업이 ‘창업-성장-퇴출’ 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 신진대사를 저해하고, 결국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된다면 이들을 돕기보다는 퇴출시키는 게 더 현명한 결정이라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