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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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답사] 조선왕릉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의 능, ‘목릉’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답사


]


조선왕릉 선조와 의인왕후


·


인목왕후의 능


, ‘


목릉





안녕하세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며칠 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을 답사하였는데


,


오늘은 조선왕릉 선조와 의인왕후


·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img


1.


구리 동구릉은


?


구리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


기의 능이라는 뜻


으로


,


조선 왕실 최대규모의 왕릉군


이다


.


즉 동구릉에는


9


개의 능이 있어 조선 왕조


42


개 능의


20


퍼센트가 포함될 정도로 비중이 남다르다


.


동구릉은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9


개의 능에


17





(





)


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가족묘다


.





9





17





(





)


의 왕과 왕비가 안장되어 있으며


,


총 면적이


191





5,890


제곱미터나 된다


.


동구릉은 사적 제


193


호로 지정되어 있다


.




1408


년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건원릉이라 이름한 뒤


, 1855





(


철종


6)


익종


(


翼宗


)


의 능인 수릉이


9


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


2.


목릉


穆陵


(


선조와 의인왕후


·


인목왕후의 능


)





.


목릉의 개요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동원이강릉


. 능의 조성


: 1600





(


선조


33), 1630





(


인조


8), 1632





(


인조


10)


img


img


img


img





.


목릉의 구성


목릉은 조선


14


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와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


목릉은 같은 능역 안에 각각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


同原異岡陵


)


의 형식이다


.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선조


,


가운데 언덕이 의인왕후


,


오른쪽 언덕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


선조의 능은 기본적인 왕릉상설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


혼유석


,


망주석


,


석양 및 석호가 배치되어 있다


.


의인왕후의 능과 인목왕후의 능은 병풍석만 생략했을 뿐 상설은 선조의 능과 같다


.


정자각은 원래 의인왕후의 능 앞에 있었다


.


그러다가


1630





(


인조


8)


에 선조의 능이 천장되면서 기존의 목릉 정자각을 이건


(


移建


)


하게 되자 의인왕후 능 앞에 있던 정자각은 헐었다


.


이 후 인목왕후의 능이 조성되면서 치우친 정자각을 다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


이건이 번거롭다하여 신로만 정자각에 접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


따라서 현재 목릉의 정자각은 선조의 능을 향하여 있으면서 신로는 세 능으로 모두 뻗어 있다


.


목릉 정자각은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다포식 공포로 지어진 건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





.


목릉의 역사


목릉은 처음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가 정유재란이 끝난 직후인


1600





(


선조


33)


에 세상을 떠나자


,


현재의 자리에 유릉


(


裕陵


)


이라는 능호로 조성되었다


.


이 후 선조가


1608


년에 세상을 떠나자


,


건원릉 서쪽 산줄기


(


현 헌종의 경릉


)


에 목릉이라는 능호로 조성하였다가


1630





(


인조


8)


에 물기가 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심명세


(


沈命世


)


의 상소에 따라 현 위치로 옮기고 의인왕후의 유릉


(


裕陵


)


과 목릉의 능호를 합하여 목릉이라 하였다


.


1632





(


인조


10)


에 선조의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


처음 혜릉


(


惠陵


)


이라는 능호를 정하였다가 목릉과 능역을 합치자는 의논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


선조


(


宣祖


)


이야기


선조


(


재세


: 1552





~ 1608





,


재위


: 1567





~ 1608





)


는 중종의 아들인 덕흥대원군과 하동부대부인 정씨의 셋째 아들로


1552





(


명종


7)


에 인달방


(


현 서울 사직동


)


사저에서 태어났다


.


처음에 하성군에 봉해졌다가


, 1567





(


명종


22)


에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인순왕후의 명으로


(


명종의 양자 입적


)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


선조는 즉위 초에 매일 경연에 나가 토론하고


,


밤늦도록 독서에 열중하였다


.


훈구세력의 힘을 억제하고 이황


,


이이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다


.


그러나 명종 말년부터 일어난 붕당정치의 시작으로 정여립의 모반사건과 세자책봉 문제로 옥사가 일어났으며


,


국력이 쇠약해져 국방대책을 세우지 못하던 중


1592





(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


임진왜란에 이어서 정유재란이 일어나 두 차례에 걸친


7


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


선조는 전후 복구작업에 힘을 기울였으나 거듭된 흉년과 정치의 불안정으로 인해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


그 후


1608





(


선조


41)


에 경운궁 석어당에서


57


세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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